어금니가 설원과 같아서 화이트 팽이라 불린 늑대개는 살기 위해 자신을 숨긴다. 아니, 자신의 마음을 적셨던 어미로부터의 따뜻하고 다정한 느낌들, 세상의 따사로운 빛들을 지워버린다. 지워버린 그 자리에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잔인하고 포악한 근성을 채워간다. 그 누구라도 자신의 옆구리를 노리거나, 밥그릇을 노린다 싶으면 가차 없이 징벌한다. 그러다 자신보다 더 흉포한 인간을 만나 뼈가 가루가 되는 고통에 놓인다. 고통 속에서 모든 것을 잃고 마침내 끝이라고 여겼을 때, 한 남자의 손에 구조된다. 화이트 팽에겐 그 남자도 똑같은 인간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화이트 팽의 존엄을 존중해 주었다 아주 신사적으로. 오래 시간 기다려주며. 드디어 화이트 팽은 남자의 품으로 파고든다. 둘은 생명의 교감이 어떤 것인지 증명해 보인다.
‘나의 삶, 존재는 원시 그 자체’라고 묘사하는 잭 런던의 작품 야성의 부름 · 화이트 팽 이 펭귄클래식 코리아 2012년 마지막 리스트로 출간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에도 자주 등장하는 작가 잭 런던은 어린 시절부터 통조림 공장 노동자, 굴 양식장 해적, 해적 감시 순찰대원, 원양어선 선원, 부랑자 생활 등 다양하고도 험난한 시간들을 보냈다. 덕분에 냉정하리만큼 원초적이고 날카롭게 자연을 그려냈으며, 자연주의 문학의 교훈을 실현했다는 평을 얻는다.
「야성의 부름」은 야성을 모르고 살았던 개가 알래스카에 들어가 거친 매질과 훈육을 통해 야성이라는 본능을 깨닿는다면, 「화이트 팽」은 야생 속의 늑대가 인간이라는 신을 만나 복종과 사랑을 배우는 과정을 그린다. 잭 런던의 두 작품은 모두 야성을 그리고 있으나, ‘개에서 늑대로, 야생에서 인간 곁으로’라는 반대되는 구조를 통해 야성의 모습을 정의한다.
잭 런던의 야성은 경쟁, 고독과 이를 통해 태어나는 적응, 복종, 사랑까지 대변하고 있으며, 늑대는 ‘궁극적인 야성의 피조물, 가장 사납고 신비하고 아름다운 동물’로 설원을 상징하는 하나의 정신이 되었다. 잭 런던은 야성의 치열한 생존 본능 속 절대적 아름다움을 말한다.
서문 / 예외적이고 잔인한 생명력의 생생한 영상
판본에 대하여
야성의 부름
화이트 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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