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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


# 작가의 다른 작품 내 이름은 루시 바턴버지스 형제에이미와 이저벨# 읽고 나서. 이 따스한 이야기 속에서, 아직 세상을 등지고 싶어 하지 않는 강인한 여인 앞에서, 어째서인지 울적함만 남은 기분이 드는 건 내가 정말로 나이를 먹어가고 있고, 그걸 매 순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나이를 아직 현명하게 먹어가고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막연하게 나는 쿨하게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현실 앞에서 어느 누가 그렇게 쿨하게 나이 먹을 수 있을까. 수십 년을 함께 지내오던 가족들이 하나 둘 스러져가고, 밑도 끝도 없던 자존심의 근원이 뿌리째 흔들리고, 경멸해 마지않던 그 모습으로 나도 점점 가까이 가고 있다는 걸 지켜보면서 어떻게 쿨할 수 있을까.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작은 마을의 수학선생님을 중심으로 그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보여준다.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사람들은 천천히 나이를 먹어가고, 그런 세월을 정면에서 마주한다. 그동한 잘 살아왔다며 나이 든 스스로를 위안하는 시점에서 그들은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도 하고, 더 불행한 삶을 지켜보며 자신의 처지를 위로받고 싶어하는 그리 고결하지 않은 생각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며 실망하기도 한다.누구도 비켜갈 수 없지만, 마지막은 좀 더 평화롭고 준비된 상태였으면 좋겠지만, 무리한 욕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무섭고 울적해졌다. 그 모든 풍파에도 마지막까지 그녀처럼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이다.*밑줄약국헨리는 모든 것을 데니즈의 눈을 통해 그려보았고, 그녀에게는 아름다움이 폭력이리라 생각했다.헨리는 사람들이 혼자 있는 걸 원치 않았다."경험이란 그런 거죠. 삶의 우선순위가 한꺼번에 정리되고, 그 후론 제 가족에게 깊이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있어요. 가족과 친구보다 더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밀물 "가족이 없는 사람도 많지." 골스타인 박사가 자신의 희끗한 턱수염을 긁으며 말하더니, 가슴에 떨어진 비듬을 뻔뻔하게 털어냈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집은 있어." 거대한 배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골드스타인이 말했다.세상은 언제나 슬프게 돌아간다. 그리고 새 시대의 여명은 언제나 있다.희망은 마음의 암이었다. 그는 희망을 원치 않았다. 원치 않았다. 이 연약한 초록빛 희망의 싹이 가슴속에서 움트는 걸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 미친, 이 우스운, 알 수 없는 세상이여! 보라. 그녀가 얼마나 살고 싶어 하는지, 그녀가 얼마나 붙잡고 싶어 하는지.피아노 연주자앤지는 이제 머리를 복도 벽에 기대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검정 치마를 만지작거리며 자신이 뭔가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그리고 그것이, 너무 늦었을 때에야 뭔가를 깨닫는 것이 인생일 거라고 생각했다.작은 기쁨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 과 작은 기쁨 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크리스토퍼는 자기가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하는 여자와 살 필요는 없다. 뭐든 다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사람은 자기가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니까.굶주림"아, 나는 젊은 사람들이 참 좋아." 하먼이 말했다. "사람들한테 욕을 많이 먹긴 하지만. 사람들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게 젊은 세대의 일인 양 말하지. 하지만 그건 결코 사실이 아니야, 안 그래? 젊은이들은 희망차고 착해. 그래야 하고 말이지."겨울 음악회제인은 심장발작 이후로 사람들 앞에서 죽게 될까 봐 걱정했다. 지난번 발작은 부엌에서 일어났지만 사람들 앞에서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몹시 불안했다.툴립그녀는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과 있는 건 더 싫었다.여행 바구니어떤 여자도, 어떤 어머니도 그런 일은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아들을 도둑맞으리라고는.아니, 그녀는 누군가의 깊은 슬픔을 보며 자신의 어두운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비쳐들기를 바라며 왔다.아래에서 물수제비 뜨기에 여념이 없던 에디 주니어를 생각한다. 그 느낌을 올리브는 다만 기억할 수 있을 뿐이다. 돌멩이를 집어서 힘을 조절하여 바다에 던질 여력이 있는 젊음을. 아직 그 짓을 한 만한, 망할 돌멩이를 던질 힘이 있는 젊음을.병 속의 배나는 키터리지 선생님이 어느 날 했던 그 말이 늘 기억에 남아 있어. 배고픔을 두려워하지 마라. 배고픔을 두려워하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얼간이가 될 뿐이다.불안때때로, 지금 같은 때, 올리브는 세상 모든 이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걸 얻기 위해 얼마나 분투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필요한 그것은 점점 더 무서워지는 삶의 바다에서 나는 안전하다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사랑이 그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어쩌면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담배 피우는 앤을 바라보며 생각하건대, 그런 안정감을 갖는 데 아버지가 각기 다른 세 아이가 필요했다면 사랑으로는 불충분했던 게 아닐까.강유일한 걱정은 매일 운동을 해서 더 오래 살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거였다. 죽을 땐 제발 숨이 금세 끊어졌으면, 그녀는 생각했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했다.망할, 우린 늘 혼자예요.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지. 혼자 죽은들 뭐가 다르담? 우리 불쌍한 영감처럼 요양원에서 몇 년이나 시들어가지 않는다면야. 난 그게 겁나요.동시에 올리브는 머릿속으로 그를 비난했다. 혼자 있는 게 두려운 거야, 올리브는 생각했다. 약해빠져서 말이지. 남자들은 그러니까. 밥해주고 따라다니면서 치워줄 사람이 필요한 거야. 그렇다면 잭은 잘못 짚었다. 잭은 어머니 이야기를 자주 했고, 그것도 아주 열렬하게 했다. 그걸 보면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엄마가 필요하면 딴 데 가서 알아보라지.나는 내 손자들도 이 강에서 배를 탈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내 손자는 뉴욕에서 자라고 있어요. 그게 세상 이치인가 봐. 하지만 가슴이 아프지. 우리 유전자가 민들레 홀씨처럼 그렇게 여기저기 흩어진다는 게.올리브는 이렇게 발할 뻔했다. "아, 그만해요. 난 겁먹은 사람은 싫어요." 헨리에게, 그리고 누구에게나 그렇게 말했을 터였다. 어쩌면 두려워하는 자신의 면모를 싫어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햇살 좋은 이 방을, 햇살이 어루만진 벽을, 바깥의 베이베리를. 그것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세상이. 그러나 올리브는 아직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았다.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연작소설
2009년 퓰리처상 수상작
우리 인생의 여러 나날들의 의미를 묻는 소설(김연수)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미국 메인 주의 작은 마을 크로스비 사람들의 이야기를 열세 편의 단편에 담아낸 연작소설이다. 퉁명스럽고 허점이 많으면서도 매혹적인 인물 올리브가 있고, 독자의 정서에 진하게 호소하는 세련된 작품 이라는 평을 들으며 2009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소금기 머금은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평범한 인생에 대한 가슴 시리도록 절절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에는 퉁명스럽고 무뚝뚝하며 차갑고 강인한 여인 올리브를 축으로 마을의 다양한 사람이 등장한다. 모두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대양을 닮은 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 좋은 남자 헨리(「약국」), 떠나간 옛사랑의 희미한 그림자를 붙들고 살다 오랜만에 해후한 옛 연인을 통해 자신이 뭔가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그리고 너무 늦었을 때에야 뭔가를 깨닫는 것이 인생일 거라 는 깨달음을 얻는 앤절라(「피아노 연주자」), 와병 중이던 남편을 잃고 장례식을 치르다 병이 나으면 함께 가자며 남편과 꿈에 부풀어 준비했던 여행 바구니를 보며 자신을 책망하는 말린(「여행 바구니」) 등 저마다 삶이 남긴 생채기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작가는 평범해 보이고 흠 없이 매끈해 보이는 삶의 이면에 울퉁불퉁하고 까끌까끌한, 마주하기 힘든 치부들이 있음에 주목한다. 깊게 파인 삶의 주름들 사이에는 차라리 외면하고픈 뼈아픈 진실들이 숨어 있지만 작가는 그것이 견딜만 한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을 견디는 것이 결국 인생이라고 토닥토닥 위로한다. 벼락 맞아 시커멓게 타버린 검은 나무에 연둣빛 싹이 돋듯, 우리의 삶에도 연약하지만 굳건한 그런 희망이 언제나 함께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약국
밀물
피아노 연주자
작은 기쁨
굶주림
다른 길
겨울 음악회
튤립
여행 바구니
병 속의 배
불안
범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