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는 로마 제국의 마지막 백여년을 다룬 책으로, 쓰여진 지 백 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고대 로마를 다룬 책의 고전이자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는 작품이다.민음사의 번역본은 로마제국 쇠망사를 완역한 동시에, 주석과 해설도 풍부해서 보다 재미있고 깊이 있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로마 말기에 대한 갖가지 자료를 체계적이면서도 흥미롭게 재구성해서, 재미있게 읽었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전 6권 세트
그리스와 더불어 서구 문명의 원형으로 칭송받고, 140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서서히 멸망해간 대제국의 역사를 쓰고자 마음 먹는 것은 그 자체로 용기를 요구한다. 더구나 그 용기가 다른 이들에게 객기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려면 용기 이상의 실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는 용기와 실력을 모두 갖춘 당대의 역사가를 만났으니, 고전의 반열에 오른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는 그렇게 탄생했다.
기번은 로마 제국이 쇠퇴해 가는 과정을 아주 실증적이면서도 유장한 문체로 다루고 있다. 1776년에서 1788년까지 12년에 걸쳐 전 여섯 권으로 간행된 로마 제국 쇠망사 는 수없이 많은 로마사 책들 중에서 대표적 작품이며, 영문학사상의 명저로도 꼽힌다. 그리스도교의 확립, 게르만 민족의 이동, 이슬람의 침략, 몽골족의 서정(西征), 십자군 원정 등 광범위한 지역에 걸친 사건을 다루어 고대와 근세를 잇는 교량의 역할을 하는 저서로서, 시공간적으로 방대한 스케일을 지니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서양 세계의 기원인 로마 역사에 대한 기본 중의 기본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긴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면서도 어디 하나 소홀함을 지적할 부분을 찾기 힘든 것은, 어디까지나 저자의 공이다.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자면 사료에 대한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분석이 종종 결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기번은 입수 가능한 자료에 대한 철저한 탐구, 상세한 고증, 오랜 시간과 인내를 요구하는 집필 과정을 성실하게 이루어나가 당대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한 서술을 이루어 내었다.
더구나 흥미로운 점은 역사가의 주요 역할이 도덕적인 교훈을 찾아내는 데 있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던 시대에, 사회의 운명을 결정짓는 보편적인 법칙을 찾아내거나 흥망성쇠의 필연적인 주기를 주장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는 발전한다, 역사에는 보편적인 법칙과 방향, 단계가 있다라는 근대의 단선적인 역사관이 더 이상 지지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주목되는 것이다. 그저 인간과 역사를 탐구함으로써 과거와 과거의 다양하고 복잡한 사건들을 이해하고 설명하려 했던 기번의 노력은 역사학과 그 역할의 변천과 무관하게 그 지위를 도도하게 누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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